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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판례 이야기

의료과실 승소 판례,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송

2013년 여름, 한 중학생(A)이 여드름 치료를 위해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피부과에 방문했다. 담당 의사는 A양에게 한센병 치료제로 유명한 항생제 '댑손'을 처방했다. 그러나 A양은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한 지 약 3주가 됐을 무렵부터 시작된 고열로 응급실에 옮겨졌다. 의료진은'약물 과민반응 증후군'을 원인으로 보고, 2주간 입원 치료에 나섰으나 A양의 상태는 나빠져 갔다. A양은 결국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되었지만, 이송된 이후 간 손상으로 나타나는 '전격성 간부전'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같은 날 간이식 수술을 받은 A양은 한 달이 넘는 입원 치료를 받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이후에도 A양은 급성 담낭염 등으로 인한 수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술로 인한 큰 흉터와 후유증과 함께 현재까지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고 있다.

 

2014, A양과 부모는 동국대측을 상대로 "의료진의 과실로 A양이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됐다" 5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치료 효과가 없는 약을 처방한 데다 부작용이 발생했음에도 투약을 중단하지 않아 간 기능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치료과정에서도 간기능을 악화시키는 약품을 무분별하게 투약해 부작용을 초래했다고도 주장했다.

 

1심은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병원 측이 미성년자인 A양과 보호자인 부모에게 댑손의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점만 인정해 1,6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의 판사는 담당의가 A양의 피부병을 무엇으로 진단했는지를 주목했다. 당시 병원 진료기록에는 A양의 병명이 PPD(색소성 자색반 피부염)로 기재됐다. 병원측은 PPDPP(소양성 양진)을 잘못 적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PPDPP는 피부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치료 방법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PP에는 댑손이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는 반면, PPD에 댑손을 치료제로 제시하는 의학논문들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 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따져 비급여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식품의약품 안전처에 PPD를 치료하기 위해 댑손을 처방하겠다는 비급여 승인 신청이 접수된 사례도 없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담당의가 A양에게 댑손을 처방한 것은 의료상 과실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병명을 제대로 진단했더라면 A양이 부작용을 겪지 않았으리란 취지다. 결국 오진이 원인이었다. 또 댑손을 처방할 시 간 기능의 무리가 올 수 있어 환자에 대해 혈액검사와 간 기능 검사를 시행해야 하지만, 이를 실시하지 않은 과실도 반영됐다.

 

이에 따라 병원 측의 의료과실 비율을 70%로 보고, A양 측에 약 2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양이 간이식 수술로 '5급 간장애인'으로 판정된 점과 복부에 커다란 흉터가 생겨 성형술이 필요한 점 등이 고려됐다.

 

이 판례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나는 순간 멍해졌다. 환자의 부모님과 환자에게 댑손을 처방해준 담당의사 때문이었다.

 

가끔 변호사 없이 스스로 소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변호사 없이 어려운 법률과 판례를 사건에 적용하는 일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논리적인 소송 전략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똑똑한 선택은 아니다. 더욱이, 대형 병원을 상대해야 하는 의료과실 소송의 원고라면 법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의료 과실에 대한 입증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과실 소송 전문 변호사 없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일은, 나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소송의 원고는 바로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결국 전부 승소에 가까운 재판부의 판결을 이끌어 내고야 만다. 바로 환자의 부모님이다. 부모님이 작성해서 제출한 서면은 분량도 엄청나지만, 횡설수설이나 중언부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문제의 의료 과실에 대한 입증이 논리적이었고 입증자료의 해석 또한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A양의 부모님이 작성한 서면을 읽고 있노라면 그 서면에 들인 노력과 정성이 느껴져 웬만한 변호사가 작성한 서면보다 훨씬 훌륭했다고 한다.

 

2013년 딸아이의 입원과 수술을 겪으며 무너진 마음을 다잡고,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약 5년 간의 고단하고 외로운 소송 과정에서 법률전문가도 의료전문가도 아닌 그 부모님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싸워 왔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또 하나 이 소송의 특이한 점은, 문제의 담당의사가 'PPD로 진단한 환자에게 댑손 등의 복용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오진을 인정하고 본인이 속한 대학병원에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다. 담당의사가 해당 서면을 제출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담당의사도 그 부모님의 힘겨운 싸움을 보고 나처럼 마음이 먹먹해졌던 걸까.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 결과가 A양과 특히 그 부모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