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국민연금 책임투자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ESG(환경, 사회책임, 기업구조) 공시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기업들에게 ESG 공시를 어떻게 의무화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의 CSR 지침(2014/95/EU) 유럽연합에서는 CSR 지침을 통해 기존의 회계지침(2013/34/EU)을 개정했다. 주요 내용은 비재무적 정보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19a, 29a)과 다양성 문서를 발행하도록 하는 조항(20)이 추가된 것이다. 이 중, 19a와 29a는 적용 대상이 다를 뿐 거의 동일한 내용의 조항이다. CSR 지침 상에서 비재무적 정보 공시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적용 대상: 근로자 500 명 이상의 공익실체(public interest entity) (19a), 근로자 500명 이상의 통합공익실체(consolidated public interest entity)(29a)
B. 공시 내용: 최소 1) 환경, 2)사회와 고용 문제 3)인권 4)반부패와 청렴을 포함하여 해당 사업체(entity)의 1) 비즈니스 모델, 2) 관련 정책과 시행한 과정, 3) 정책의 결과, 4) 이러한 사항에 관련해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리스크와 사업체가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5) 관련 비재무적 실적 지표
C. 공시 방법: 경영 보고서(management report)에 비재무적 정보에 관한 문서(non-financial statement)를 포함시키거나 별도 보고서 발행
이를 토대로 각 유럽연합 회원국은 국내 실정에 맞게 국내법을 도입한다.
유럽 외의 국가에서는 어떻게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을까?
호주와 뉴질랜드는 국내법 외에도 각각의 증권거래소를 통해 기업들이 ESG 공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는 ASX 2014 가이드라인의 권장사항 7.4에서, 뉴질랜드는 NZX의 기업 지배구조 강령(Corporate Governance Code) 2017 권장사항 4.3에서 각각 ESG 리스크 존재 여부와 리스크 관리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권장 사항”에 지나지 않지만 원칙준수 예외설명 원칙을 통해 상장기업들이 연차보고서에 각각의 권장사항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며, 만일 이행하고 있지 않다면 왜 그러한지를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고, 문서를 발행하지 않는 경우 상장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등의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미국은 유럽처럼 종합적인 ESG 공시 의무 법은 없지만 부분적인 공시 의무 법이 여럿 존재한다. 그 중 비교적 많이 알려진 두 법 중, 첫번째는 도트 프랭크 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 2010)이다. 도트 프랭크 법의 섹션 1502는 콩고민주공화국(이하 DRC)에서 생산되는 분쟁광물을 소비함으로써 DRC의 인도적 위기 상황를 악화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기업들이 광물의 공급지와 관리 연속성(chain of custody)에서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보고서를 온라인에 게시하고 독립적인 감사를 받도록 한다. 만약 DRC 분쟁광물이 사용된 제품이 있다면 제품 설명, 이용된 시설과 생산국,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느 광산에서 생산되었는지를 명시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감사 이후 신뢰 부적합(unreliable) 판정을 받는 경우, 해당 규정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두번째는 캘리포니아 공급망내투명성법(California Transparency in Supply Chains Act, 2010)이다. 이 법은 생산에서 유통, 판매까지의 공급망에서 현대노예제와 인신매매 리스크를 확인/방지하는 데에 목적을 둔 법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하고 있는 리테일이나 제조업체 중 연 1억 USD 이상의 세계 수입이 있는 기업은 온라인 홈페이지 혹은 공식 문서를 통해 공급망에서 현대노예제와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기업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이 법은 영국과 호주, 캐나다에서 도입되었거나 입법 과정 중에 있는 현대판노예법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영국은 2015년, 호주는 2018년에 도입한 현대판노예법(Modern Slavery Act)은 기업들에 캘리포니아 공급망내투명성법과도 비슷한 공시 의무를 부여한다. 영국의 현대판노예법은 현대판 노예제도와 인신매매에 적극적인 대응으로 큰 의미가 있는 법률이지만 동시에 공시 부분에 있어서는 도입된지 4년이 넘은 시점에서 그 한계점도 지적되고 있다. 각 기업의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문서를 한 데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Business&Human Rights Resource Centre가 발행한 보고서에서는 도입된지 3년이 지났지만 현대판노예법이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고 평가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형식적인 문서를 발행하기만 하고 몇몇의 소수 기업들만이 진정으로 현대판 노예제와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평가다.
호주에서 도입된 현대판노예법은 영국의 것과 달리 공시 문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정부가 문서들을 한 데 모아 누구나 온라인으로 열람 가능한 등록부(registry)를 운영하도록 한다. 공시 의무 불이행 시, 정부는 그러한 사실을 공시할 수 있다.
한 편, 아직 입법 중에 있는 캐나다의 현대판 노예법은 공시 의무 불이행 시 처벌(즉결심판, 최대 250,000 CAD 벌금)도 가능하도록 한다.
이렇게 해외에서는 시행되고 있는 ESG 관련 공시를 의무화 제도들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특히 국민연금과 같은 규모가 큰 투자자의 투자 결정에 있어서는 수익을 올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전 과정이 모두 책임감있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법과 판례 이야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허권 공유 관련 대법원 판례: 공유물분할 가능합니다 (0) | 2019.09.11 |
---|---|
금융회사의 핀테크 투자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 제정 (0) | 2019.09.10 |
U.S. Federal Rules Provide Assistance for Discovery in Foreign Matters (0) | 2019.08.29 |
전직금지 이슈, 너무 심하면 인정 못받아요 (0) | 2019.08.26 |
복지포인트는 통상임금이 아닌 것으로 (0) | 2019.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