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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판례 이야기

층간소음, 피하는게 상책

층간소음.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소음에 민감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워낙 소음에 예민한 사람이라서, 층간소음을 겪느니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다. 실제로 맨 위층에 살고 있다.

 

층간소음의 법적 기준이 있을까? 있다. 본인 기준에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고 해서 모두 층간소음인 것은 아니다. 2014년 제정된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국토교통부령 제97, 환경부령 제559)’(소음 진동 관리법)에서 층간소음의 법적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우선 1분간 일정 크기 이상의 소음을 유발하는 경우 층간소음으로 본다. 주간(오전 6시부터 밤10)에는 43dB 이상, 야간(밤10시부터 익일 오전 6)에는 38dB 이상이 층간소음의 기준이다. 몸무게 20~30kg의 아이가 1분 동안 집안을 뛰어다닐 때 발생하는 소음이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을 유발하는 것도 층간소음이 될 수 있다. 이때 층간소음 기준은 주간 58dB 이상,야간 52dB 이상이다.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층간소음에 적용되는 규칙이나 법률에 벌칙이나 과태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식 감정이라는 절차를 통해 윗집이 발생한 소음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증명해야 한다. 소송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입증한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 내가 겪은 층간소음이 수인의 의무를 넘어서는 고의적인 권리침해임을 증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동주택에 산다는 건 상대의 생활습관을 이해하기로 묵시적으로 약속하고 들어왔다고 본다. , 어느 정도는 서로 참아줘야 한다는 것이 수인의 의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내가 겪은 층간소음이 '수인의 의무'에 따라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소음기준을 넘어서고 상대방이 고의적으로 공동생활에서 참을 수 없는 소음을 일으켜 내가 받은 피해가 입증 가능할 정도로 명명백백해야 하는 것이다(실제 손해배상에서 승소하게 돼도 사실상 손해배상액은 생각보다 적다).

 

층간소음 문제를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의 비효율성을 알고 있는 나는 깨닫는다. 층간소음은 내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멀고 귀찮아도 맨 꼭대기 층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층간소음 문제로 꽤 스트레스를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아랫집 거주자 입장에서만 늘 층간소음 이슈를 보아왔는데, 오늘 윗집의 입장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해 승소한 판례를 접하게 되었다. 아파트 위층에서 층간소음을 유발했는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층간소음에 항의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차례 욕설을 하고 수십 차례 인터폰으로 항의하며 윗층 주민의 직장에 민원을 제기한 아래층 주민이 손해배상을 하게 된 판례다.

 

판사의 의견은 이렇다.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거주하는 피고(아랫집)로서는 이웃집에서 발생하는 통상적인 수준의 소음은 어느 정도 감내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원고들(윗집) 역시 마찬가지로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이웃을 배려하여 과다한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을 의무가 있다. 그런데 아랫집에 거주하는 피고들이 느끼는 소음을 모두 원고들이 발생시킨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이고, 원고들이 소음의 진원지가 자신들이 아니라고 항변함에 대하여 피고들이 사실 확인도 해 보지 않은 채 거짓말로 치부하였던 점과 피고의 욕설, 민원 제기, 원고의 자녀들에게 했던 언사 등은 포괄적으로 원고들의 평온한 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여 수인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하는 것이어서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김포 본가에 갈 때마다 늘어나는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기서는 또 얼마나 많은 층간소음 싸움이 벌어질까.

 

출처: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504503245

 

* 참고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라는 국가 분쟁조정 기관이 존재한다. 여기에 상담을 신청하면 전문가의 현장 소음측정 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민사로 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