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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고 넓은 상식은 필수

리디노미네이션(화폐개혁), 화폐에서 0이 사라지는 날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굉장히 심오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쉬운 개념이다. 화폐의 가치는 그대로 두고 화폐의 액면을 바꾸는 것이다. 1,000원이 1(1,000원의 가치를 가지고)이 된다고 생각하면 쉽다.

 

1달러=1,200.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1달러가 1,000 단위를 넘어가는 유일한 나라다. 통상적으로 저소득 국가의 환율이 이처럼 네 자리인 경우는 있어도 국민소득 3만 불 국가가 달러 대비 환율이 네 자리인 경우는 없다고 한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화폐단위가 높아 발생하는 불편함이 많아지게 된다. 얼마전 나트랑에 여행 가서 계산할 때마다 매번 생각이 멈추고 멍 해지던 생각이 난다. 지폐에 0이 너무 많다. 나 숫자 포비아 있음. 1,000,000? 500,000? 0하나 빼고 2로 나누느라고 안 그래도 나쁜 머리를 가지고 얼마나 헤맸던가.

 

지난 3월 한국은행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이후, 화폐개혁의 실현 가능성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

 

화폐단위가 낮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화폐개혁이 발생하면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950원의 경우 0.95로 변경되는데 이렇게 되면 쉽게 1.00이 되는 우수리 인상(소수점에 들어간 금액을 단위 올림)이 비일비재해지기 때문이다. 4,500원 하던 커피 가격이 4.5원이 되고 4.5원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우수리 인상되어 5원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리디노미네이션은 일시적이나마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초래해 정부 재원 마련의 기회가 된다(고 한다). 지하경제에서 거래되던 기존 화폐를 신권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추가 세수가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1953년에 진행된 1차 화폐개혁 때는 1인당 최대 500환 까지 신권으로 교환해주고 나머지는 만기 정기예금이나 국채 예금으로 강제 전환시켜 지하자금이 제도권으로 유입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1962년에 진행됐던 화폐개혁 때는 구권을 전액 신권으로 바꿔주었는데 이렇게 교환된 신권은 즉시 다시 숨겨져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실패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신권 교환하다가 세금징수 당할 거였다면 애초에 지하경제가 어떻게 존재했겠나 싶다.

 

리디노미네이션은 또한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수요를 높게 만들어 부동산 시장의 혼란은 불가피하게 된다. 또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게 될 것이고 주가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도 혼란을 겪게 된다. 기본적으로 환율상승과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작용 효과들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요즘 리디노미네이션이 초래할 부작용들을 강조하면서 당장이라도 화폐개혁이 될 것처럼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화폐개혁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선 국회에서 한국은행 법을 개정해야 하고 화폐 디자인과 권종을 결정하게 된다. 신권을 제조 및 발행한 이후에도 상당 기간 화폐 교환 기간을 가지고, 신구 화폐를 병행하여 사용하는 기간도 지나야 한다. 화폐단위가 완전히 변경될 때까지 대략 5년에서 10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원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불안한 법이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 것인가??!!